개발의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 귀국길에 올랐다. 가벼운 마음이었다. 특히 아무도 해결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차에 제품 가격의
원가와 퀄리티를 조절해 제품을 생산할 수있게 했으니 말이다. 샘의 맥주파티로 귀국 전날을 기분 좋게보내고, 조만간 모든 것을 정리해서 다시
중국에 오겠다고 약속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기본적으로 제품 생산에 필요한 사항과 주의점그리고, 컨셉에서 빠지면 안 되는 모든 사항을 점검, 또 점검하고 2주 만에 다시
공장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왠 말이냐. “사스”라는 이상한 바이러스의 근원지가중국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에서는
중국에 가지 말아야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게 되었다. 어떻게 발병이 되었는지, 또어떻게 전염이 되는지, 그 무엇도 바이러스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고, 또 치료약도 없고 예방도 없다고 하니 말이다.
샘에게 연락을 하니 홍콩으로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과, 그래도 만약 온다면,
자신도 함께 중국 공장으로 움직이겠다며 친구로써의 마음을 전달했다.

당시,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물건인데, 그리고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면서 일하고 있을
텐데…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되라지…’ 결심을 하고,다음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탑승하니, 승무원이 이상하게 쳐다보며, 마스크를 나누어 준다,
비행기 탑승인원은 전부 5명 뿐이었다. ‘일을 하는데 있어 환경이 힘들어 진행하지못한다면, 도대체 어떠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잘
가다듬은 일이었는데, 이러한 환경이 올 줄은 생각하지도못했다. 홍콩에 도착하니, 샘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아무도 오지 않는 홍콩과 중국에
이카가 왔다며, 혹시 자기가보고 싶어 온 것은 아니냐고 묻는다. 바로 공장으로 가자고했다. 또 긴 시간의 육로 이동이 시작되었다. 샘은 공장에
가도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아무와도 악수조차 하지 말라고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 역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피곤한 몸에 차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저녁시간쯤 공장에도착하니, 회의실에서 기다리던 모든 매니저들이 나를 보고미소를 지었다. 같은 동양인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인의 모습은 확실히 다른 모습임에도 그들을 보니, 이상하게 오래 전부터 같이 일해온 친구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가
먼저 잘
있었냐?라고 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들은 악수하면안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들의 두 손을 그냥 잡았다, 괜찮다고 하면서…
1차 회의,
2주 전 정리된 일들은 모두 생산시스템에 정리되어개발과 같이 들어가면 된다고 해서, 다음아침 미팅을 약속하고 호텔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졌다.
‘사스에 걸리면 걸리라지…’
다음날 아침 미팅시간에는 10명 이상의 매니저들이 각자 맞은 파트를 설명하기 위해 모여 전체회의를 진행하였다.
‘왜이리 매니저들이 많을까? 진짜 이러한 파트들이 다 필요한것인가?’ 란 의문도 들었다. 첫 회의의 QC파트에서부터, 나의 혼돈은 시작되었다,
QC란 파트가 왜 있으며, 내가 만드는데 왜 불량이란 전제를 두고 있는지 의아했다. 나중에 더 많은 경험을 하고서야, 제품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개발의 기획에서부터 모든 생산은 QC라는 파트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고, 이 파트가 완결되어야 제품의 공장 출하가 진행되는 매우중요한 단계임을
알았다. 이 파트에서는 제품의 주인과 공장의 점검기준표를 만들어 생산시간, 제품완성도, 제품 인도시기 및 운송업체와의 타임테이블도 같이 진행해야
하므로 매우 중요하다.
“좋은 생산이란 좋은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수량의 제품 수준 평균값을 올리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QC에 대해 수렴된 의견은 쉽지 않은 제품이라는 것과 더 많은 신경을 쓸 테니, 로이 앤 블록 쪽에서도 QC에 대한 기준선을 제안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몰드개발 매니저와의 미팅에서는 설계상의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델링을 했는데 이게 웬말인가? 의견을 나누어 보니,
공장 쪽에서는 지금까지 아주 단순한 형태만 만들었지, 이처럼 곡선이 많고, 겹치는 종류의 설계는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모델링을 하고,
R/P가 나와도 생산적용에는 더 많은 프로세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델링은 단지 제품의 형태와 기능상의 문제점을 체크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
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3명의 매니저와 미팅을 하고 나니 벌써 저녁이 되어 다음날로 후속 미팅을 정했다. 집중되는
회의 때문에 사스에 대한생각은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다음날 아침, 몰드 매니저와 사출(인젝션)매니저와의 미팅에서 이견이 있었던 사항들이
정리되었다. 로이 앤 블럭이 모델링을 하고 설계를 책임을 질 테니, 사출과 생산에서의 기능상문제점만 공장 쪽에서 책임지라는 내용이었다. 설계를
끝내기 전까지는 나도 귀국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 팀 엔지니어와 7일 동안 밤을 지새며 모델링 데이터와 설계데이터를 만들어 가는 작업을
했다.
사실, 디자이너로써, 아무리 사장이라고 하지만, 내가 이러한일을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익히는 데는 늘 고난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또중국에서의 제품 생산에 대한 모든 프로세스를 직접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한국 디자인 진흥원에서 회의를 하는 시간이 있었을 때 알게 된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디자이너가 엔지니어파트를 관여한다는 것은 불문율로 금기시되어 있다고 한다. 몰드에 대한 디자이너의 의견과 제안은 거의 없다고 하니말이다.
중국에서의 경험에 대해 나는, 중국이라는 새로운 스승이 있었기에 내가 큰 가르침을 받은 것이라는 감사의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디자이너의
개발 초기 참여 환경은, 내가 제품의 주인이기도했지만, 중국의 다양한 생산시스템과 분업화 그리고 내가 외국인이란 특이성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외국인이었기에, 나는 늘 공장에서 자세한 설명과 의견을 제안하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새로운 학습과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몰드 설계를 디자인파트에서 핸들링 하면, 원가의 절감과, 제품 디자인의 초기 모습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기에 소비자의
컨셉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사실 디자인은, 시장의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 몰드들의해석과 관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어렵게 완성된 설계에 대해서는 디자인 모델링을 그대로 적용하고 사출방향과 몰드의 수를 줄여 매우 합리적으로 설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제품 자체의 성격이 로봇이어서 기본형 몰드의 수보다도 너무 많게 정리 되었다. 너무나 높은 원가 부담도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초기 단계에서 좋은 디자인보다, 생산에 적용될 수 있는 기본개념을 추가적으로 적용하는 프로세스를 적용하고
있다.
“가장 좋은 제품이란 소비자의 주머니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아야 한다”제대로 된 설계를 보기 위한 워킹 샘플을 만들기로 한
시간이다가왔다.
그래야 제품의 몰드 툴링과 사출에서의 방법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워킹샘플은 거의 시제품과 같은 퀄리티로
만들어지고, 샘플도 5~10개 이상 만들어서 각 파트의 매니저에게 전달하여, 각 파트의 프로세서로 확장 적용한다. 이시기에는 기계파트와 프로그램
파트, 그리고 데코레이션 파트 등 패키지를 제외한 모든 파트를 가동해 하나의 시제품에집중하기 때문에 누구 하나라도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면
안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시제품은 첫 사출품과 완성도에 있어 차이가 있으므로 사출제품에 대한 인식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일들이 잘 진행되던 어느 날, 공장에서 나에게 마지막컬러 결정을 부탁했다. ‘아, 그렇지, 내가 그래도 5개 색으로모든 색을
만들어 본 사람인데, 내피에는 감각적인 피가 흐르는데…’
공장의 조색실로 가자고 하고, 나는 생산컬러의 기준이 되는 팬톤 넘버 샘플을
가지고 그리고 향했다. 매니저와 함께간 곳은 내가 예상했던 조색실과는 너무나 달랐다. 우리나라의 경우 샘플과 플라스틱 칩, 조색 기계들이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5평 남짓한 공간에 3명의 청년들이 드럼통 위에서쉬고 있었다. 여기가 아닌가? 란 생각이 들어 “이색을 만들러조색실을 찾으러
왔는데” 라고 물어보니 조색실이 맞다고한다.
그리곤 측량기계도 없이 드럼통을 들고 어두운 곳에서 색을섞기 시작한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무래도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것 같아서 무어라 말을 하니, 신경 쓰지말고 10분 있다 오라고 한다. ‘아, 순조로이 진행되는 일이
여기서 또 난관에 부딪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10분이 흐르고, 조색실에서 만든 색을 가지고 왔다. 나는 이런 시스템으로 내 제품의 외관을
꾸미고 싶지 않아 내심 벼르고 있었건
만, 조색된 색은 내가 건넨 팬톤의 넘버와 똑같은 색이었다.‘이럴 수가! 측량제조기도 없이 어떻게
색상과 채도와 명도를 그 어두운 곳에서 만들 수 있었을까? 나중에 더 집중화된일이지만, 플라스틱의 색감은 고온고압에서 사출되어야 하고이를 감안한
색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사출재료와 같은 기준재료의 데이터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생산은 공장에서 준비하는 자료보다 그 이상의
준비를 해야, 더 원활하게 개발과 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설계도, 조색도, 몰드 툴링도 순조로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프로그래밍이 쉽지 않았다.
완구성격의 제품이지만, 로봇의다양한 프로그램이어서 너무나 많은 로직이 필요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하지? 누가 이러한것을 정리할 수
있을까? 테스트는 잘 할수 있을까? 컨셉에는잘 맞아야 할 텐데…’ 너무 많은 걱정에 호텔로 돌아와서도 편히밤을 보낼 수 없었다.
며칠 후
한국에서의 프로그램 설계와 중국에서의 설계가 화두에 올랐는데, 한국에서의 프로그래밍언어는 고급이지만 생산에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의
프로그램을 새로진행하기로 했다. 6명의 프로그래머가 한 팀이 되었다.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에 다시 한국에 귀국하며, 한달뒤 만남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