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안다.
중국에서의 메카포드의 개발과 생산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에서는 더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메카포드는 로봇의 기능을 기반으로 캐릭터화 된 제품이라는 생각보다, 캐릭터 사업적으로 더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의 기반을 준비하기로 했었다. 결국 로봇에서 출발한 제품기획이지만, 보다 다양한 문화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디자인과 소개책자, 영상 등을 별도의 자금을 투입하여 진행하였다. 그 당시 메카포드가 홍콩의 토이쇼에서 계약이 되고 한국의 경제신문에 소개된
후, 국내외 큰 애니메이션 기획사로부터 많은 제안이 들어오게 된 것도 당시 많은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무와도 계약을 안하고, 계속적으로 자료에 대한 보완과 정비를 해 온 이유는, 마음에 드는 파트너도 없었지만, 더 완벽하고 포괄적인 기획과
준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사업의 영역으로..
이렇게 묵은 김치 같은 메카포드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태권도
프로젝트와 연결되고 있는 것은 기막힌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사람과 술은 많이 익을수록, 또 그 가치를 위해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메카포드의 계약은 8월에 있었던 홍콩 키프트쇼에 참가했을 때 이루어졌다. 워낙
무거운 제품이어서 그런지, 2년 반 동안 샤퍼이미지의 담당 부사장이 5번이나 바뀌었다고 하니…
샘과 함께 마련한 부스에 반가운 소님이
왔다.
서신으로만 알고 지내던 사람을 실제 만나게 되니 반가웠다. 의외로 그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였으며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홍콩현지에
샤퍼이미지의 사장이 직접 왔다고 했다. 이 말은 자신은 곧 퇴사할 것이라는 뜻이었고,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곧바로
샤퍼이미지의 사장이 우리 부스를 방문했고, “얼마나 대단한 제품인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초도 오더량을 20K로 하고
싶다고 밝혔다. 20K란 2만 대를 말하는데, 어떠한 제품에도 초도 오더량이 이렇게까지 많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새 제품에
대한 시장의 테스트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구나, 8월이면 시기적으로 성탄시즌에 제품을 판매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이다. 그러나
샤퍼이미지는 메카포드를 어린이들의 성탄절 메인 상품을 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제품에 대한 생산계약이 대부분 판매시기로부터 2년
전에 예약이 되어 이루어진다.
더구나, 가장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성탄절 시즌의 제품은 SHIPPING이 빠르면 8월에서 늦어도
10월에는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다. 결국, 개발자나 생산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제품화 하면 모든 것이 끝나고,
시장에서의 반응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시장은 매우 꼼꼼한 스케줄로 움직인다. 샤퍼이미지는 2년 동안의 제품계획을 메카포드 때문에 바꾼
것이다.
아마도 메카포드 때문에, 어느 회사의 어떤 제품이 그해 성탄절 런칭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샤퍼이미지의 조건은 거의
파격적이었다. 물론 제품의 대금은 L/C로 80% 결제, A/S도 자신들이 책임지고 마케팅 및 관련 업무도 자신들이 담당하겠다고
했다.
사장이, “어떻게 우리 아이들(미국)이 좋아할 스타일의 제품을 만들게 되었나? 혹시 미국에서 공부를 했느냐?” 라고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제품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어디나 똑같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이니까요”
지금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순수하기에 내 자식에게 선물할 제품을 기획하고 만든다면, 분명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환영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 문제는 메카포드의 생산에 관한 것이었다. 얼마 안 남은 시간이었지만, 야근을 해서라도 제품을 납품해야 했다. 일정을 체크한
후, 한번에 모든 수량을 납품하기 보다 나누어서 공급하기로 샤퍼이미지와 계약을 했다. 옆에 있던 샘은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틀어 이와 같은 일은
처음이라며 연신 놀라기만 했다. 전시회 기간 동안 나는 바로 중국의 동관으로 이동하여, 생산에 대한 일정을 회의를 거쳐서 정리를 했고, 샘의
회사에서 미국으로의 공급에 관련된 일들을 맡기로 했다.
생산기간은 총 2개월 정도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빨리 진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메카포드의 개발 과정이 길었던 것도 있겠지만, 생산과정에서 공장과 유기적인 협력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생산이 끝나고
샤퍼이미지에서 관련 마케팅 홍보 책자와 사이트가 오픈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판매 4주 만에 품절이 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고, 미국에 사는 후배에게서 메카포드를 오프라인 샵에서 보았다는…그리고 뭉클했다는 연락도 받게 되었다. 메카포드의 추가적인 주문에 대해
샤퍼이미지에게서 연락이 왔었지만, 더 이상의 제품 공급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개당 가격이 거의 200$에 육박하는데 이는 가격적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판매사인 샤퍼이미지가 제품을 너무 비싸게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제품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가격적으로도 소비자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정작 제품 가격이 200$나 되면 어떤 아이들이 마음대로 살수 있겠나
싶었다. 그리고, 인도, 영국, 러시아, 중동의 지역에서도 주문이 들어왔었으나 모두 거절했다. 고집일 수도 있겠으나 더디게 가더라도 정확히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메카포드는 나에게 의미하는 것이 매우 크다.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들은 자신의 권리를 갖기보다는, 아웃소싱에 의한
수익을 위해,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컨셉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때문에 지면상의 디자인이 지닌 한계로 인해 실제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생기고 생산성이 많이 떨어져,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많은 비용적, 시간적 부담과 손해를 입히기도 한다.
8년
전 한 장의 스케치로 미국에 가서 구두로 약속을 할 당시를 상기하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서
실체를 만들어 내었고, 더 많은 경험과 학습을 할 수 있었다.
당시의 노트를 보면 디자인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고, 네모사각형으로 이루어진
프로세서와 공장에 관한 새로운 경험들로만 가득채워져 있다. 이 시기 나는 늘 디자인이란 생산에 적용되어야 할 가장 우선순위이고, 마지막 단계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디자이너가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컨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화 시키는 방안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경험 조차 없다면, 그 디자이너는 단지, 생각을 시각화하는 기능을 잘 하는 사람일 뿐이다.
디자인은 서비스 분야이고
대중에서 더 나은 모습의 서비스를 다양하게 제공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제조업의 후퇴와 대기업의 집중으로 인해 산업적 불균형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 중국, 미국 등의 국가적 분리가 아닌, 소비자 중심의 관점에서 서로가 유기적인 역할을 잘 분업한다면, 우리의
소비자들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고, 이것으로 인해 삶에 대한 질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는 디자인이 시각적인 분야에만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더 발전된 시각으로 과학을 선도하여 이끌 수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과 산업간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메카포드는, 그 이후로 더 많은 자료를 보충하고 준비를 해 매년
업데이트하고 있다.
2012년 올해, 새로 기획하는 캐릭터와 함께 다시 런칭할 계획을 잡고 있다. 8년 전의 제품인데도, 아직도 토이쇼나
로봇 페어에 나가보면 메카포드와 같은 제품이 없다. 그 이유는 너무 고가의 제품으로 기획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모든 제품들이 시장에 집중되어
진행되는 까닭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너무 비효율적인 제품을 기획한 것도 이유일수 있겠다.
메카포드 개발 이후로, 나는
새로운 제품을 기획하는데 있어서, 시장의 가격과 생산의 효율성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데, 아마도 메카포드를 개발하고 생산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익이라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메카포드는 나에게 새로운 학습과 경험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회사의 수익과 지명도도 높여준 계기가 되었다. 홍콩 토이쇼에서 참관한
한국경제의 기자가 로봇 완구라는 주제로 우리의 이야기를 기사화하였고, 샘은 홍콩신문에 우수 회사로 소개되어 메카포드와 함께 홍콩신문에 크게
실리기도 하였었다. 또한, 디자인진흥원에서 주체하는 “차세대 디자이너” 프로젝트에 로봇이라는 주제로 지원하여, 정부로부터의 많은 지원과 미디어와
대중매체로부터의 인터뷰가 밀려들어왔다. 아마도 정부와 미디어는 신기했을 것 같다. 디자이너 혹은 디자인 회사가 용역 오더로 수익을 창출하면
되는데 왜 그처럼 많은 위험요소를 무릅쓰고, 자체 개발 생산을 진행했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을 법도 하다. 더구나 로봇이라는 아이템으로
말이다.
잡지, 신문, 방송 등의 인터뷰와 전시회 등이 당시 나를 너무 피곤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이윽고 결국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시, 매일 경제라는 신문은 창간 40주년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창간일자를 맞이하여, 한국을 이끌 40인을 각계각층에서 선발하여,
특집기사화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황우석 박사의 사건도 있었고, 김연아 선수와 박태환 선수가 한창 어린 나이의 유망주로 주목
받던 시기였다. 뭐랄까? 아직 대한민국에서 그다지 유명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대기만성의 인물들이랄까…
어느 저녁에 매일경제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일 계속 하실 거죠?” “네? 무슨 일이요? 로봇 만드는 일이요? 아니면, 자체 개발
생산 하는 일이요?”
“음.. 둘 다요!” 아이고, 이러한 일을 계속 하라는 무언의 편집장의 압박과도 같은 멘트..
나야 원래부터
하고자 한일이니까 아무 말없이…”제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지치지 않는 일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편집장은 “그럼 사장님!
내일 아침 기사 보세요”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아침, ‘오늘 나에 대한 무슨 기사가 나오는 모양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신문을 사서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 “한국의 미래를 이끌 40인의 선정”에 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게 웬일인가? 신문 1면에 로이
앤 블록과 나에 대한 기사가 나와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신문사에서는 드라마틱한 인물을 고르려다 보니, 디자인, 로봇, 작지만 강한 회사,
등등의 컨셉에 내가 부합되었나 보다.
그날 그 기사를 읽고, 유명인이 된 나의 모습 보다는, 그 동안 진행해 온 일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많은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물론 얼굴과 이름도 뚜렷이 기억 못하는 우리 공장들의
공인들도 다 포함해서....
며칠이 지난 후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영화사라는데요, 사장님을 만나고
싶다는데요? 어떻게 하죠?”
많은 인터뷰와 섭외 때문에 개인의 일정을 만들 수 없기에 “그냥 요즘 바쁘다고 하세요.”
그리고 또 며칠
지나지 않아 영화사에서 또 전화가 왔다고 한다.

“여보세요? 네, 저희는 000영화사인데요, 로봇에 대해 고견을 듣고 싶어서요. 저희가 로봇태권브이를 영화화 하려고 하는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로봇 태권브이…
내가 6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극장에서 보았던 영화…그리고 대학생 때, 로봇 태권브이의 디자인작업에
대한 섭외가 들어왔던...그 태권브이…
생각할 것도 없이 다음날로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에게 영웅이었던 로봇 태권브이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