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전에는 아시아가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당시 유럽인들에게 동방은 금과 은이 넘쳐나고물자가 풍부한 이상향이자 탐험의 대상이었다. 이후세계의 무게 중심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강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아시아는 잠시 무대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또다시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으며, 한·중·일 3국이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1세기 신동방견문록을 쓰게 된다면 동방의 3국은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현재 전 세계 자동차 중 약 40%가 한·중·일 3국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3국의 조강 생산은 전 세계약 60%를, 선박 수주량은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중·일이 세계 수출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품목 수는 2012년 기준 1780개로 전체의35%에 달한다. 과거 동방이 부(富)가 넘쳐난다고 전해지는 미지의 땅이었다면, 21세기 한·중·일은 전세계에 공급할 제품들이 생산되는 제조업 기지로그려져야 할 것이다.
한·중·일이 세계의 제조업 생산기지라는 명성을얻게 된 것은 과거 세 나라의 상호 보완적 분업구조를 통해 가능했다. 일본은 하이엔드(High-end)기술, 부품·소재·장비산업, 한국은 미드엔드(Midend)기술 제품, 중국은 로엔드(Low-end) 기술 제품에 특화한 분업구조를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를움직이는 제조업 생산기지가 된 것이다.그런데 지난 30년간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일본의 장기 침체로 3국 간 협력보다는 경쟁이 격화되는 추세이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한·중·일의 분업구조는 급격히 경쟁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각자의 주력산업이매우 유사해진 탓이며, 앞으로는 철강·조선·전자 등일관공정 산업과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경쟁이 더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중·일은 이제 서로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글로벌 시장을 차지하게 되며, 앞으로 5~10년 이내에 세계시장을 두고생존을 건 진검 승부를 펼쳐야 할 것이다.이러한 결전을 앞둔 3국의 비교우위를 살펴보자.
중국은 14억이라는 인구수 자체가 확실한 비교우위다. 14억 인구를 배경으로 한 소비 시장과 천문학적인 R&D 투자 규모와 속도가 향후 중국 경제를 이끌어갈 힘이자 경쟁력이다. 이미 조립완성품 제조업기지로서 자리매김한 중국은 앞으로 이 분야에서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다. 정보기술(IT)산업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이미 가시화되고 있으며 다른 산업 분야로도 이 추세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중국을 둘러싼 위기설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중국 경제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전환하는 힘겨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성장통이기에 건전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의 무게중심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우리가 이 중심축에 위치할지, 아니면 중국의 주변국으로 머무르게될지는 향후 10여 년간 우리가 한·중·일 3국의 관계 변화에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일본의 비교우위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들과 차세대 기술의 축적이다. 일본은 제조업 기지로서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지만, 기술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들이 건재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3위 안에 드는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 기업이 일본에 1500여 개가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독자적인 원천기술 확보를원칙으로 장인 정신하에 장기간 꾸준히 임하는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부품·소재·장비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제조업 생산기지 역할은 약화되겠지만 상당한 비교우위를 축적한 고기술·고부가가치 부품·소재·장비 위주의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한국은 대기업의 빠른 의사결정에 의한 선제적 투자와 제조기술 중심의 조립완성품 분야의 조직 능력으로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났다. 이런 비교우위가 중국 등후발국의 추격으로 빛이 바래고 있다. 1990년대 말일본이 그랬듯이 우리나라 조립완성품의 경쟁력 역시 정점을 거쳐 점차 약화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생산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하는 2010년대 후반부터는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도 5000만밖에 되지 않는 소국(小國)이기 때문에 내수시장 규모로도 3국 중 가장 불리하다. 게다가 부품·소재·장비분야에서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한편, 한국의 조립완성품 분야 경쟁력은 소수 대기업에집중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조차도 중국의 추격이라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조립완성품은 중국이, 부품·소재·장비 분야는 일본이 최고의경쟁력을 가지게 되어 우리나라는 양국 사이에 낀새로운 형태의 샌드위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이러한 암울한 미래를 피하고 한국이 동방의 역동적인 신흥 선진국이 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우선 단기적으로는 기존의 성장동력인 조립완성품의 경쟁력을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가 제품은 중국에 밀리고, 중·고가 제품은 일본에 밀릴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기술력 향상에 매진해야 할 뿐 아니라 최고 수준에 도달한 기술을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둘째,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여 육성해 나가야 하는데 1순위 후보가 바로 중소·중견기업이 담당하는 부품·소재·장비 분야다.과거 우리 조립완성품 분야가 일본의 부품·소재·장비를 공급받아 경쟁력을 키워 발전했듯이, 향후 중국의 조립완성품 발전에 우리가 일본과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20~30년 동안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조립완성품 분야뿐 아니라 부품·소재·장비 기업들도 일본을 떠나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이므로 우리는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중간 영역에서 첨단·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즉 제조업 기지로서의 일본의 역할이 퇴조될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부품·소재·장비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한편 한·일 양국기업의 기술 협력, 인력 교류 등을 강화하고 일본 기업에 대한 M&A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넷째, 민간과 정부가 힘을 합쳐 중국 내수시장이우리의 제2의 내수시장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중 FTA 체결 등을 치밀하게 준비해 나가야 한다.세계의 무게 중심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가 이 중심 축에 위치할지, 아니면 중국의 주변국으로 머무르게 될지는 향후 10여 년간 우리가 한·중·일 3국의 관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출처 :Chindia plus
안현호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산업통산자원
부(옛 지식경제부) 산업정책국장, 산업경제실장, 차
관을 역임했다. 30년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산업 분
야에서 근무했다. 2011년부터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