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사구시 [實事求是]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과 같은 실험과 연구를거쳐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을 통하여 정확한 판단과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
로보트 태권브이는 나와는 많은 인연이 있다. 내가 여섯살이었던 1976년에 로보트 태권브이라는
만화를 극장에서 상영했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그 즈음 아버지께서 외국에서 귀국하셔서,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계셨었는데, 당시 내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환호를 했다고 한다. 그다지 감정표현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그런 어린 시절이 낯설기만
하지만…
그리고 대학생 때, 로봇의 구조에 미쳐 있을 때, 아는 지인의 소개로 태권브이에 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백지수표를받았음에도 그 회사의 불투명성 때문에 결국 프로젝트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마징가제트를 그대로 모방했기에, 한편으로는 저작권에 관한
여러가지 구설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유일무이한 대한민국의 로봇 캐릭터가 또 다시 나에게러브콜을 한 것이다.
그 당시 한국의 미래를
이끌 40인의 선정에는 순위가 없었지만, 특이하게도 내가 신문 1면에 나오게 되었던 것은 내가 하는일과 삶이 꽤 드라마틱하게 여겨졌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에 선정된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각계각층의 분야에서 선정된 사람들이었던 것을 보면 내가 선정된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인것 같다. 그
신문을 보고, 이해는 안 가지만, 꽤 많은 곳에서 축하전화와 사업적인 제안도 받았으니, 어린 나로서는 다소 불편한 일이기도 했다.
2번째
태권브이 제안은 태권브이의 부활이었다. 76년의 탄생,30년 이상이 된 태권브이를 현재의 시간으로 부활하자는 기획이었는데, 협력사가
영화사였기에,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 작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래된 유물,
로보트 태권브이는 지금까지 너무 관리가 안되어있었으며, 어떤 기획조차 안되어 있었다.
항상 중국공장에 갈때면 나는 내 제품에 대한 부분에만
집중하지는 않았었다. 나에게 있어서 중국공장은 내가 배우고 익힐수 있는 학습 보물창고와도 같았으니까. 그곳에는 세계각국의 다양한 회사의 제품들과
프로세서, 그리고 공장에서의 적용법 등 다양하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 있어 나에게는 중국에 있는 여러공장들이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곳에서
늘 궁금한 것이있었다. 중국공장의 대부분 클라이언트들이 미국, 유럽, 일본의대기업들이었는데 그들은 다양한 제품에 대해 매우 효율적이며 합리적으로
스케줄을 짜고 개발과 생산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런데 한국의 경우 나름 완구업계에서 큰 회사라고 해도 제대로된 프로세서와 개발, 생산을
진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중국에서 OEM공장 100여 개를 돌아보고, 개발, 생산을 진행하다 보면, 중국공장들이 한국회사의 제품을 나에게
보여주거나, 그 회사에 관한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너무도 조악하고, 문제점이 많은 제품들이었던 기억이 많다. 그때 언젠가는 한국에도 우리나라
아이들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제품에 대한 라인업을 재대 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늘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두번째로 만나게
된 로보트 태권브이였다.

사실, 2족 보행 로봇을 만들려고 하면, 너무 비싼 개발비와 생산 원가, 많은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오히려 과거에 어린이들의 영웅이었던 태권브이의 제품 라인업을 잡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로봇인형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태권도를 하는 로봇. 30년 전의 슈퍼로봇의 이미지를 가지고 상품을 기획하고, 틀을 만드는 일은 처음부터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이윽고 태권브이의 원본 디자인을 받아보았을 때 나는 깜짝놀랐다.
태권브이는 만화
영화 기반이어서, 공장의 제품으로 생산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부분이 부족했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스케일에 대한 정의도 없었고, 색감에 대한 기본
정리도 되어 있지 않았다.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다. 30여 년 동안 그냥 쓰레기로 방치되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 되었다.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고, 다시 바로 잡아야만 했다. 마치 고화를 원복이 퇴색되지 않게 다시 복원해야 하는데, 그 느낌이
현재의 느낌과도 맞도록 하는 것과 같은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다.
주제는 과거의 향기가 나지만, 현재의 맛도 있으면서, 미국과 일본의 틀이
갖춰져 있는 산업 문화처럼, 늦었지만, 우리도 아이들에게 태권브이의 다양한 놀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작업이 지닌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평면을 입체로 표현하는 것.
그래서 작업의 시작은 태권브이의 묶은 때를 벗기고, 새롭게 구조와 디자인, 그리고 색감의
정리, 면의 해석 등, 다양한 제품으로 확대 될 수 있도록 하는 기초작업부터 들어갔다. 이러한 작업이 없이는 어떠한 디자인도 공장에서 대량
생산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초반의 틀을 잡는 작업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이 알려진 캐릭터이기에.
태권브이의 기초작업은 우선 다양한 디자인이 아니라 영화에서 나온 컨셉을 디자인화 하는 부분에서 시작되었고, 2족 로봇에 근거하지만, 인간과
같은 태권도를 하는 기계유기체를 표현하는 것이었기에, 구조적인 프로포션에 대해 매우 큰 비중을 두고 작업했다. 인간이 직립하였을 때의 다리구조의
모양과 상체의 프로포션이 제대로 구조화되어야 제품으로 만들어졌을 때도직립하고, 그 원형의 모양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얼굴의 경우, 많은 면들이 단면으로 그려진 부분을 입체화하여, 만화 영화에 기반을 둔 것이지만, 캐릭터의 기능을 보다 더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에 초기 디자인 작업부터 제품의 개발과 생산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확장성을 위한 기준선을 잡는 데에 주력하였다.
기초
디자인 작업만 거의 6개월의 시간을 투자하고, 협력사와 회의를 거친 끝에 40cm의 크기를 가진 로봇인형을 개발, 생산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시 중국행.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면서 나는 자주 홍콩의 샘과 함께 홍콩과중국에서 많은 미팅을 가지며, 이번 작업에
대한 개발과 생산에대해 논의했기에 프로젝트는 무리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개발, 생산에 관한 서류를 정리하니 거의 1,000장이 넘는
방대한데이터의 결과물이 나왔다
생산이 문제였다. 소비자의 시장가격에 맞춰야 하고, 소비자의 만족도도 높여야 하는 것이 매우 큰 이슈였다.
기본적으로40cm의 사이즈면 판매가격이 매우 비싸지므로, 외형과 내부의재질을 다르게 하고, 도장작업에서도 합리적인 생산법을 적용해야 했다.
캐릭터를 이용한 제품이므로 캐릭터의 이미지가 똑같이 생산물로 나와야 하는 등 모든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어야 했다.
결론은,
외부는 로테이트 몰드방법의 사용, 내부는 외형 구조체를 버틸 수 있는 인젝션 ABS몰드, 도장은 인젝션컬러와 스프레이 컬러를 겸용하기로
했다.
디자인이 잘 나와도, 시장에 맞는 가격을 맞추지 못하면, 그 제품은 소비자에게 환영받지 못하기에, 이러한 세세한 부분이 결국 좋은 디자인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디자인 분야는 개발과 생산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면, 자신만의 추상화를 소비자에게
강매하는 모습이 된다. 이러한 것은 그 나라의 산업 경쟁력 기반과도 면밀히 연관이 있기에,태권브이의 작업을 하면서 나는 또다시 우리나라의 현실을
느끼게 되었다.
관련된 모든 서류를 가지고, 다시 샘과 동관의 공장으로 출발했다.
기본 자료를 전달하고 설명했으며 샘과는 협업하기로
상의를 하고, 이번에는 더 다양한 공장에서 개발, 생산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원형 분석 작업이 들어갔고, 원형을 서로 각기
다른 재질로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로토 몰드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섭외한 결과 현재는 중국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는
공장이 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토몰드는, 몰드의 형식이 사출 물을 계속 로테이트 시킨다는뜻에서 나온 말인데, 그 불량률이 너무
커서 중국에서도 많이사용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한다.
더구나, 이번 제품이 정밀한 로봇의 형태를 가지고 있기에, 많은공장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 나는 ‘앞으로 험난한 인스펙션이 기다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결국은 좋은 제품은 누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집중하느냐에 달려있구나’하는 확신이 섰다.
로토몰드 회사의 방문은 그 자체가 충격이었다. 수없이 많은원형 틀과 낙후한 환경, 그리고 많은
제품들이 즐비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번 제품도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 로봇의 형태이고, 단순화된 면을
입체화했기에 나도 그다지 쉽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로토몰드의 원형은 과거 메카포드처럼 몰드툴링으로 작업하지않고
파라핀 작업으로 원형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것에 쇠를 덧대고 그 안에 파라핀을 녹여 원형의 틀을 만드는데, 아무리 원형을 잘 만들어도 분명
오차가 나게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생산재질이 가소성이 있는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때문인데 그 안에 정밀한 구조체를 삽입하는 작업으로,
3개의 회사에서 같은 도면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후 결합하는 방법을사용하자니 프로세서의 정리가 많이 요구되었다.
로토몰드는 이곳 공장,
파라핀 작업은 저곳, 원형은 저곳, ABS는 저곳, 툴링은 저곳, 조립은 이곳…등등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다.
작은 제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은 공정과 생산 프로세서를 밟아야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것을 만들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조업에 대한
기반도 무너졌고, 수익창출에 대한 모델도, 다른 산업으로 넘어갔으니까.
샘이 물어본다. “이카!! 너무 힘들게 만드는 것 아니야? 좀더
편하게 가면 좋을 텐데..” 아니다. 30년 전의 캐릭터이기에 더 빛나고, 새 것같이 만드는 것보다 클래식하면서도 기품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기에 기획한 그대로 개발방식을 고수하자고 했다.
험난한 여정이 시작이 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이기에, 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새롭게 익히기에 몸의 고생은 그리 걱정이되지 않았다.
캔섬에서의 첫 미팅은 그 방대한 내용의 개발서류와 스케줄 등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정리가 되었고, 본 작업에서의 개발 시간도 많이 줄일 수 있었다.대부분, 개발과 생산을 한다고 하면 시간을 많이 소비하게 되는데
이는 곧 손실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개발과 생산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시작도 결과가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공장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원형작업의 시작은 두 곳에서 진행하였고, 모든 원형은 3개를만들어 두 곳의 회사와 로이앤블럭에서 보관하며 작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곳에서 개발해도 우리 쪽에서는 계속 앞의 진도를 유지해 주어야 개발에 무리가 없으므로, 개발이 들어가는 시점부터
매우바빠지게 되었다.
‘기다려 태권브이, 내가 이제부터 생명을 불어넣어 줄테니...’